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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기념관 후기 I 한 편의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by ㅇㅈ라이언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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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기념관 관람 포인트

 

✅ 우리나라의 각 시대별 전쟁의 역사와 애도

✅ 전쟁에 사용된 무기들

✅ 전 세계 전쟁의 역사를 통한 고찰

✅ 대한민국 최신예 무기들

👉🏻 학생, 성인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좋은 전시장입니다.

 

대한민국의 전쟁 역사, 아픔과 교훈을 한 편의 책처럼 소개해보고 싶습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누군가가 대신 가고 싶은 곳을 데려가거나 소개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종종 있습니다.

 

전쟁기념관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못해 봤거나, 지방에 살고 있어서 갈 수 없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오늘은 1분 정보통 - 시간 절약 특파원이 여러분을 대신하여 역사적이고 교훈적인 전쟁기념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으로 우리 한번 떠나볼까요?

 

전쟁사 종합박물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위치. 관람, 전시해설, 예약 안내, 단체, 교육 프로그램, 문화행사, 이벤트, 전사자 정보 제공.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 입구에는 커다란 조각상이 우뚝 서 있었다. 조각상 옆으로는 많은 군인들의 동상이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불굴의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과연 이 조각상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신기했다. 전쟁기념관의 입구에 이 동상들과 조각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민을 해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전쟁으로 희생된 많은 분들을 기리고 역사에 대한 인식과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전쟁기념관 입구에 6.25 전쟁 50주년을 기리기 위해 그에 맞는 상징적인 조각상들을 세워놓았던 것이다. 

 

 

커다란 조각상을 통과하니 널찍한 분수대와 국기들이 보였다. 우리나라의 국방을 수호하는 각 군부대의 상징인 깃발과 나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건물의 첫 느낌은 사치스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초라해 보이지도 않은 절제된 느낌이었다. 전쟁기념관에 걸맞은 느낌이 이런 것일까? 전쟁기념관 내부를 관람하기 앞서 설렘이 가득해온다. 

 

용산 전쟁기념관 야외 전시에는 각 군이 자랑하는 무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쟁기념관 입구를 지나고 우측을 보면 넓은 야외전시장이 나를 부른다.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비행기와 탱크들, 장난감일까? 호기심에 이끌려 첫 발길을 그쪽으로 향해보았다. 멀리서 장난감처럼 보이던 각종 비행기와 탱크들은 용산 전쟁기념관이 얼마나 많은 전시물과 스토리가 있을지 가늠하게 해 주었다. 각 군에 탱크와 비행기 그리고 최신예 현무 미사일까지 우뚝 세워져 있었다. 이렇게 많은 무기들이 전쟁에 이용되어 왔고, 이런 무기가 나라를 지켜준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6.25 전쟁에 희생된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야외전시장에서 멋진 무기들과 비행기, 탱크들을 관람하고 전쟁기념관 건물로 본격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얼마나 멋지고 좋은 이야기들이 전시되어 있을까 내심 설레기도 했던 찰나, 내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공간이 나왔다. 그곳은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국인들의 이름이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아주 다양한 군부대, 그리고 많은 이들이 잠들어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계급과 육, 해, 공을 떠나 많은 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 과거들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감사하고 숙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숙연한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께 작은 묵념을 마치고 진짜 전쟁기념관 건물 입구로 발걸음을 향했다. 아뿔싸! 요금표를 보니 성인 1인에 20,000원이라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돈은 받지 않았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무료라는 말도 있었고, 1인 20,000원이라는 말도 있었다. 용산 전쟁기념관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확실히 구분 지어보았다. 입장료는 무료임이 확실해졌다.

 

 

역시 소문이 무성할 때는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해당 홈페이지를 찾아가서 확인하는 것이 최고이다. 역시 입장료는 무료였고, 주차비도 나름 저렴한 수준이었다. 용산 전쟁기념관 입장료와 주차비는 위를 참고하도록 한다. 전쟁기념관은 고조선부터 대한민국까지 모든 시대의 전쟁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스토리 방식으로 둘러볼 수 있었다. 나는 고조선부터 전쟁에 대한 역사를 둘러볼까 하다가, 전쟁기념관 건물 입구에 6.25 전쟁 때의 희생자들의 위패들을 보고 대한민국의 전쟁 역사부터 관람을 하기로 했다.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관람을 하며 지난 아픔과 전쟁의 교훈에 되새겨 보기로 하였다. 

 

송안산 전투에서 포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든 육탄 10용사를 기리는 동상이다. 개성 북쪽에 위치한 송악산은 개성을 지키기 위해 잃어설 안되는 곳이었다. 이곳을 되찾기 위해 국군은 10명의 특공대가 포탄을 안고 적의 기관총진지에 돌진해 자폭을 하게되었다. 그로써 국군은 진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10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용산 전쟁기념관의 전시작품들은 지난 전쟁의 아픔에 대해서 너무나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6.25 전쟁의 아픔과 고난이 시간이 지난 현재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소대원들이 모여서 전쟁의 참혹함을 전달해주는 동상들을 보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6.25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어떤 계기로 남북한이 둘로 갈라졌는지, 6.25 전쟁의 양상은 어떠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는 전시물들이 하나둘씩 관람객에게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남한과 북한의 무기들 비교 전시물이 있었다. 대체로 시대의 흐름이 비슷하여 무기의 차이는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북한군의 무기 중에 기관단총이 좀 더 현대식으로 되어 있었고, 남한은 기관단총이 열세임을 짐작케 하였다. 하지만 고정형 기관총은 남한 것이 더 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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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에 남북한 군사력이 궁금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하자 모든 의문증이 해소되었다. 너무나도 자세하고 보기 좋게 전시되었다. 6.25 전쟁 당시 육군은 절대적으로 열세였고 해군과 공군은 비교적 비슷하였으나 과거의 전쟁은 육군에 크게 좌지우지되었을 것을 고려하면 왜 전쟁 초기에 많이 밀려서 낙동강 전선까지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되었는지 짐작케 되었다. 

 

백두산함 3인치 함포 : 백두산함에 장착했던 장비와 같은 종류의 함포이다. 1949년 10월 최초로 백두산함을 구입할 때는 무장이 었었으나, 1950년 하와이로 이동한 뒤 주포와 포탄을 구입하여 설치하게 되었다. 북한군 무장 수송선을 격침하는 쾌거를 이룬 함포이다.

포탄을 들고 항공기에 탑승하여 맨 손으로 포탄을 적진에 던지며 산화한 조종사들

맨 손으로 폭탄을 투하하던 조종사들

 

지금처럼 전투기의 성능이 뛰어나지 못한 6.25 전쟁 당시에는 항공기에 포탄을 손으로 직접 떨어트리며 적진을 공격하였다. 계급을 떠나 많은 조종사들이 맨 몸으로 포탄을 던지며 적진에 침투하였고 많은 이들이 산화되었다. 이곳에는 적진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산화된 조종사들의 동상이 새워져 있었다. 포탄이 떨어지면 자신의 전투기와 함께 적의 탱크에 돌진하던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다시 한번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6.25 전쟁은 처음에 우리 국군의 엄청난 희생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이 함락되고 대한민국의 주요 도시들이 함락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인 부산으로 최후 후퇴가 되었고, 낙동강을 기준으로 격전을 펼치게 되었다. 국군이 전쟁에 고군분투를 하던 때에 많은 학도의용군이 전쟁에 참여하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군번도 없이 전투와 후방의 치안유지, 간호활동 등을 펼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 이렇게 참여한 학생은 27만여 명에 달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전쟁으로 전사하게 되었다. 

 

한 명의 학도병이 전쟁 중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처럼 6.25 전쟁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가지고 남한이 침략받게 되었고 많은 국민과 군인이 희생된 전쟁이다. 서울을 뺏기고 전국 각지의 도시들이 점령당하고 부산까지 함락되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전쟁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은 동맹 연합군과 다시 한번 힘을 내고 반격을 시작하게 된다. 

 

다시 서울을 되찾은 6.25 전쟁의 국군과 연합군

 

6.25 전쟁의 지도자들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왼쪽 부분에 6.25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던 맥아더 장군의 사진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른 6.25 전쟁. 부산까지 밀렸던 남한은 다시 서울을 되찾게 된다. 그리고 서울 시청 앞에 대한민국의 국기를 다시 게양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한국과 동맹군들은 그 기세로 중국 국경 가까이까지 치고 올라가게 된다.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기 전 중국과 러시아에게 동맹을 요청한 북한. 남한이 승리의 기세로 밀고 올라오기에 중국은 북한의 동맹국으로써 군을 파견한다. 그 이름 유명한, 인해전술의 시작이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쟁의 양상은 다시 바뀌기 시작하였다. 총탄보다 군인의 수가 많았을 만큼 병력의 수가 압도되었다. 중국의 개입으로 인해전술이 시작되었고 국군은 다시 크게 밀리기 시작하였다. 총탄보다 중공군이 많았다고 하니 정말 말이 안 될 만큼 많은 수의 군인이 투입된 것이다. 제공권의 상실과 무기 및 장비의 열세를 바로 인해 전술로 국군과 유엔군을 공격한 것이다. 특히 야간에는 함성과 나팔, 북, 피리 등을 이용하여 아군을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고 대규모 병력을 물밑 듯이 공격하는 전법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중공군이 오히려 더 많은 인명손실을 입었으나, 전선이 밀리게 될 만큼 많은 병력으로 인해전술을 펼친 중공군이었다.

 

 

6.25 전쟁의 참상의 흔적들, 많은 건물들이 붕괴되고 파괴되었다. 그리고 많은 군인과 국민이 희생되었다. 수많은 어린이와 노약자가 피난길을 나서게 되었고 배고프고 힘든 시절이었다.  다시는 전쟁의 아픔을 겪으면 안 된다. 전쟁의 참혹함을 교훈 삼아 우리 모두가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결국 전쟁이 길어지고 양 군의 큰 손실과 동맹군들의 희생이 계속됨에 따라 전쟁은 휴전이 되었고, 남과 북을 반으로 가르는 38선이 생기게 되어 아직까지 분단의 슬픔을 겪고 있게 된다. 

 

 

관람의 순서를 시간의 역순으로 돌게 되다 보니 더 와닿고 실감이 느껴졌다. 6.25 전쟁의 아픔과 교훈을 느끼고 다시 아픈 과거로 발걸음을 하기 시작했다. 그 시대의 순서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순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 많은 아픔이 깃들어 있는 일제강점기로 다시 발걸음을 돌려본다. 조선시대의 큰 전쟁은 누구나 알듯이 임진왜란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일본의 수군을 쳐치하게 되어 전쟁의 양상을 바꾸게 되었다.

 

대륙 진출을 꿈꾸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과의 교섭이 결렬되자 15만 명의 육군과 9천의 수군을 편성하여 조선을 침략하게 되었다.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 이끄는 선봉부대가 부산에 상륙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부산진성을 공격하고 한 달이 채 안되어 한성(서울)까지 진격하기에 이르렀다. 

조선군의 병력은 수도 방어 상비군 약 4만 5천 명과 서북 변경 지방군 7천여명, 그리고 각지에 흩어진 3만의 병사가 전부였다. 십만 대군을 양성하자고 했던 의견을 왕이 수렴하였다면 과연 임진왜란은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해군을 물리치지 않았다면 조선은 아마 일본에게 함락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함께, 나라의 국방력은 우리 모두를 지키는데 큰 열쇠를 차지한다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조선시대 또 다른 전쟁 중 유명한 사건은 신미양요이다. 미국 상선 제너럴시먼호에서 일어났다. 미국은 이 사건을 빌미로 조선과 통상관계를 수립하고자 조선을 침략하였다. 미국 아시아 함대 사령관이 군함 5척에 병력 1천20명을 태우고 일본을 출발하여 강화도에 접근하였다. 조선군이 이들을 거부하여 미국 함대의 포격을 받은 사건이다. 미국 함대도 피해를 받게 되는데 이 피해금액을 조선에 청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거부한 조선은 미군으로부터 다시 함포 사격을 받게 되어 초지진읍 이 초토화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미군의 목적은 조선의 개항이었으나 조선은 통상 수교를 거부하고 조선 민중의 끈질긴 대항으로 미군은 조선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1800년대에 개화 정책을 펼치고 국방 강화에 힘쓰게 되었다. 

 

 

위로는 중국, 우측에선 일본, 조선시대에도 많은 외세의 침략이 있었다. 과연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는데, 왜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를 이토록 여러 번 침략한 것일까? 그 의문은 해결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방을 강화해야 우리의 생명과 자산을 지킬 수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우금리 전투, 청산리 전투 등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많았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한복 중심의 의복에서 양복 중심의 의복으로 바뀌었고, 국군의 행사복도 양복 스타일로 변경되었다. 대한제국의 시작인 것이었다.

 

 

조선시대를 끝내고 일제의 치하에서 해방된 후 국군이 창설되었다. 1945년 11월 육군 해군 공군 등 각 군이 창설되었고 정부 수립 기념 국군 최초의 시가행진이 시작되었다. 그 후로 남과 북이 갈라지는 6.25 전쟁이 발발되었고, 현재 남한은 세계 국방 7위의 군사 강대국이 되었다. 전쟁의 아픔과 교훈으로 다시는 전쟁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고구려와 발해 등 우리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침략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 고구려 시대에 우리나라는 가장 강력한 확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분들이 들어본 이름이 있다. 바로 광개토 대왕이다. 광개토 대왕 시절 우리나라의 영토가 가장 활발하게 확장된 시절이었다. 각종 기마부대가 강력하게 전쟁에서 활약을 하였고 중국 땅까지 땅을 넓혀가던 시절이었다. 

 

 

고구려 시대의 가장 큰 활약을 선보인 기마병이다. 빠른 기동력과 강력한 군의 기초가 되었다. 만약 광개토 대왕이 확장했던 땅까지 현재 우리나라의 영토가 되었다면 한반도의 크기는 지금보다 더 넓었을 것이다. 고구려 시대와 고려시대, 발해 시대 등 많은 전쟁을 겪으며 흘러온 우리의 역사. 그동안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희생정신에 다시 한번 숙연해진다. 

 

그리고 발해와 당과의 전쟁에서도 발해는 고구려가 망하고 세워진 나라로써, 고구려의 정신을 이어받아 강력한 군대를 가지게 된다. 사진을 보면 대조영 장군이 발해의 영토를 넓히며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 일부까지 확장해 나간 것을 알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대등하게 싸우며 영토를 확장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일제의 침략을 받고 쇠퇴하며 많은 주변국들의 침략을 받으며 영토의 지배를 당하게 된다.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며, 국방의 개혁과 강화가 보다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6.25 전쟁과 대한제국의 설립. 조선과 고려, 고구려와 발해 등 많은 국가들이 전쟁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전쟁은 시대가 발전하면서 늘어난 것이 아니고 어쩌면 인류의 시작부터 전쟁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주 원시시대인 옛날의 구석기와 신석기시대에도 전쟁은 존재하였다. 한반도의 그 주변지역에서는 약 70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처음에는 돌을 그대로 사용하다가 점차 쓰임새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뗀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짐승과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이동생활을 하며 부족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변 부족과 더욱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크고 작은 많은 싸움을 하면서 역사가 진행되었다. 

 

어쩌면 역사와 전쟁은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전쟁이 이루어지면 안 된다. 전쟁의 참혹한 아픔과 교훈을 삼아 보다 나은 미래를 모든 인류가 가꾸어가길 소망해본다.

 

용산 전쟁기념관을 통해 현대부터 신석기, 구석기시대까지의 전쟁의 역사와 흐름을 살펴보게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시각자료로 전쟁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든다. 또한 다른 나라의 전쟁의 역사와 각종 정보들도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젠 다른 부가 전시품들을 보러 떠나도록 하자. 

 

목숨을 받친 모든 분들 편히 잠드소서

 

해외 파병실 전시회로 이동 중에 호국 추모실을 만나게 되었다. 조국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혼을 기리는 곳이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편히 잠드소서. 우리나라는 6.25 전쟁 때 유엔군의 연합과 동맹군의 도움을 받았다. 도움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게도 도움이 되는 파병을 여러 차례 하였다. 베트남 전쟁이 큰 예이다. 남 베트남과 북 베트남이 전쟁에도 한국군이 파병하여 큰 성과를 이루었다. 왜 지구촌엔 전쟁이 발발하여야만 하는 것일까. 아쉬움과 슬픔이 공존한다. 

 

 

고조선부터 현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을 통해 아픔과 희생이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국군도 크게 발전하였다. 용산 전쟁기념관은 전쟁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군의 위엄과 능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각 군의 쓰는 물품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K2전차, K1, K2 소총, 각종 전투함과 전투기 그리고 현무와 같은 미사일들이 진열되어 있다. T50의 개발을 시작으로 이제는 4.5세대의 KF-21 전투기의 시험비행 평가가 진행 중이며, 각종 전차와 전투기들이 유럽 곳곳으로 수출을 시작하였다. 아래 사진들을 쭈욱 구경해보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관람 중에 눈에 들어온 글 귀가 있었다. 6.25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가 보기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나라가 다시 일어서기까지는 앞으로 100년은 걸릴 것이다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50년 만에 경제 대 성장을 이루고 세계 각국에 휴대폰과 자동차, 그리고 배와 비행기를 수출하는 강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인생의 모든 선배들께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용산 전쟁기념관에는 다른 나라의 군 특성과 무기들, 군복들을 진열하였다. 그리고 전쟁 중에 발견된 유품들을 고스란히 진열하였다. 군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평화를 위해 각 나라가 군을 양성하지 않고 그 돈을 인류의 복지와 번영을 쓰면 얼마나 좋겠는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하여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니 인류의 탄생부터 전쟁은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이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 우리의 인류는 전쟁을 막아야 할 것이다. 

 

어떠셨나요? 보다 나은 설명을 위해 전쟁기념관 투어는 높임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쟁 역사를 시간의 역순으로 돌아보았습니다. 직접 가보셔서 관람을 하는 것도 좋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분들에게 큰 도움과 감명을 드렸기를 희망해봅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아래 좋아요 ❤️ 부탁드립니다. 

 

전 지구촌의 평화를 기원하며 이번 용산 전쟁기념관 투어는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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